한국 프로농구가 막 시작되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현대 걸리버스'는 매우 익숙한 이름입니다. 오늘은 한국 프로농구 초창기를 빛낸 강팀 현대 걸리버스의 전성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프로농구 출범 초기부터 강력한 전력을 갖추었고 이상민, 추승균 등 뛰어난 국내 선수들을 중심으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KBL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구단의 이름과 연고지는 달라졌지만 그 역사는 현재의 부산 KCC 이지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농구의 첫 전성기를 함께했던 현대 걸리버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프로농구 출범과 현대 걸리버스, 강팀의 기반을 만들다
1997년 KBL이 출범하기 전 한국 남자농구의 중심에는 농구대잔치가 있었습니다. 대학과 실업의 강팀들이 맞붙었고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각 팀에서 활약하면서 많은 팬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현대전자 농구단 역시 실업농구를 대표했던 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랜 실업팀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프로 구단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프로 출범 당시 팀의 이름은 대전 현대 다이냇이었습니다. 이후 1999년부터 현대 걸리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팬들이 기억하는 '현대 걸리버스의 전성기'에는 다이냇 시절부터 이어진 강팀의 역사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에는 뛰어난 국내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이상민입니다.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이상민은 뛰어난 패스와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춘 포인트가드였습니다.
이상민은 자신이 직접 많은 점수를 올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경기 흐름을 읽고 동료가 좋은 위치에서 슛할 수 있도록 공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빠른 공격에서는 정확한 패스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공격에도 나섰습니다.
추승균 역시 현대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승균은 화려함만을 앞세우기보다 꾸준한 득점과 적극적인 수비로 팀에 기여하는 선수였습니다. 여러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선수였습니다.
이 밖에도 조성원 등 뛰어난 선수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조성원은 정확한 외곽슛을 통해 상대 수비를 넓게 만들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외곽에서 득점이 터지면 상대는 골밑에만 수비를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KBL 출범과 함께 도입된 외국인 선수들도 각 팀 전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현대 역시 국내 선수들의 조직력에 외국인 선수들의 높이와 득점력을 결합하면서 강력한 전력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포인트가드 이상민을 중심으로 여러 득점원이 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상대가 한 선수에게 수비를 집중해도 다른 선수가 공격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농구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현대가 빠르게 강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실업농구에서 쌓아온 기반과 뛰어난 국내 선수들, 새로운 선수 구성의 조화가 맞물리면서 곧 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두 시즌 연속 챔피언, KBL 초창기를 지배한 현대
현대는 프로농구 출범 초기부터 정상에 도전했습니다. 첫 시즌인 1997년에는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초대 챔피언에 올랐지만 이후 현대가 빠르게 리그의 중심으로 올라섰습니다.
1997-98시즌 현대는 정규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해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맞붙었습니다.
당시 기아는 허재와 강동희 등 실업농구 시대부터 활약한 베테랑들이 중심이 된 강팀이었습니다. 현대와 기아의 맞대결은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스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현대는 챔피언결정전에서 기아를 꺾으며 구단의 첫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초대 시즌 우승팀이었던 기아에 이어 현대가 정상에 오르면서 KBL 초창기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우승만으로 전성기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현대는 다음 시즌에도 강력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1998-99시즌에도 현대는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고 다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결승 상대는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였습니다. 두 시즌 연속 같은 두 팀이 마지막 무대에서 맞붙은 것입니다.
현대는 이번에도 기아를 넘어서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두 시즌 연속 정상에 오르며 KBL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팀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현대 농구의 강점은 선수들의 역할이 뚜렷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상민이 공격을 조율하면 동료들이 움직이며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외곽과 골밑에서 다양한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민의 패스는 현대의 빠른 공격을 더욱 위협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을 잡은 뒤 오래 끌기보다 적절한 순간 동료에게 전달하면서 수비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 공격을 마무리하는 장면도 자주 만들어졌습니다.
추승균과 조성원 같은 선수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격에 힘을 보탰습니다. 한 선수가 부진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고 수비에서도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의 연속 우승은 KBL 자체의 성장과도 맞물렸습니다. 프로농구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새로운 스타와 팀의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현대와 기아를 비롯한 강팀들의 경쟁은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고 이상민처럼 대학농구 시절부터 인기가 높았던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도 활약하면서 기존 농구 팬들이 자연스럽게 KBL에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대 걸리버스에서 KCC 이지스까지, 이름은 달라도 이어진 역사
두 차례 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현대는 KBL 정상권에서 경쟁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구단 이름이 현대 다이냇에서 현대 걸리버스로 변경되었습니다.
'걸리버스'라는 이름은 비교적 짧은 기간 사용되었지만 당시 농구를 즐겨 보았던 팬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상민과 추승균 등 인기 선수들이 뛰던 시절과 맞물리면서 현대 걸리버스라는 이름 자체가 KBL 초창기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2000-01시즌에도 현대는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프로 출범 이후 여러 시즌 동안 꾸준히 상위권에서 경쟁하면서 강팀의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구단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2001년 KCC가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팀은 '전주 KCC 이지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연고지도 대전에서 전주로 옮겨졌습니다.
구단의 소유 기업과 이름, 연고지가 달라졌지만 농구단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현대 시절의 선수와 기록이 새로운 KCC 구단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상민과 추승균 등 현대의 전성기를 경험했던 선수들은 KCC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에서 KCC로 이어지는 과정은 단순한 이름 변경을 넘어 한 세대의 선수들이 새로운 구단 시대를 연결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KCC는 이후에도 KBL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여러 차례 정상에 도전했습니다. 추승균은 오랫동안 한 구단에서 활약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훗날 지도자로도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상민 역시 KBL을 대표하는 스타로 오랫동안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현대 시절 보여준 뛰어난 패스와 경기 운영은 당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한국을 대표하는 포인트가드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구단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았습니다. 2023년 연고지를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현재는 '부산 KCC 이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걸리버스와 현재의 부산 KCC 이지스는 이름만 보면 전혀 다른 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구단의 계보를 따라가면 하나의 역사로 연결됩니다.
현대 걸리버스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로농구가 막 출범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던 시기에 강력한 전력과 인기 선수들을 앞세워 리그의 흥행과 경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프로농구 초창기에 두 시즌 연속 정상에 오른 성과는 현대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팀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우승과 선수들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구단 역사 속에 남아 있습니다.
현대 걸리버스는 이상민과 추승균을 비롯한 뛰어난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국 프로농구 초창기를 대표했던 강팀입니다. 현대 다이냇 시절인 1997-98시즌과 1998-99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만들었고 이후 현대 걸리버스라는 이름으로 KBL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1년부터 그 역사는 KCC 이지스로 이어졌으며 현재는 부산을 연고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름과 연고지는 변했지만 현대가 남긴 초창기 명문의 역사는 한국 프로농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