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러 세대의 스타를 배출한 팀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역사, 시대별 스타와 전성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그 대표적인 구단입니다. 윌트 체임벌린과 줄리어스 어빙부터 모지스 말론, 앨런 아이버슨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이 팀에서 활약했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시대도 있었고 한 명의 스타를 중심으로 NBA 파이널에 도전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가 오랫동안 NBA를 대표하는 팀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 이유를 시대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윌트 체임벌린과 첫 번째 황금기, 필라델피아가 정상에 오르다
현재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원래 시러큐스 내셔널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3년 팀이 필라델피아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졌고, 미국 독립선언이 이루어진 1776년을 상징하는 '76ers'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세븐티식서스 또는 식서스라고 부릅니다.
필라델피아의 초기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타 가운데 한 명은 윌트 체임벌린입니다.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을 갖춘 체임벌린은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센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NBA에서도 처음에는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에서 활약했습니다. 이후 팀이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뒤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1965년 세븐티식서스로 이적하면서 다시 필라델피아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1966-67시즌 필라델피아는 역사적인 시즌을 만들었습니다. 정규시즌에서 68승 13패를 기록하며 당시 기준 NBA 역사상 최고 수준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체임벌린이 골밑을 지배했고 할 그리어, 쳇 워커 등 뛰어난 동료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당시 동부에는 빌 러셀이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습니다. 셀틱스는 1959년부터 1966년까지 무려 8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스턴을 넘어야 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1967년 동부 디비전 파이널에서 보스턴을 꺾었습니다. 셀틱스의 연속 우승 행진을 멈추게 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세븐티식서스의 목표는 마지막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NBA 파이널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를 만나 시리즈를 4승 2패로 마무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현재의 세븐티식서스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첫 NBA 우승이었습니다.
체임벌린은 엄청난 득점 능력으로 유명했지만 필라델피아의 우승 시즌에는 동료를 활용하는 능력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강력한 개인 능력을 팀플레이 안에서 활용하면서 더욱 완성도 높은 선수가 되었고 필라델피아의 첫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모지스 말론, 1983년 압도적인 우승을 만들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필라델피아에는 또 한 명의 상징적인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줄리어스 어빙입니다. '닥터 J(Dr. J)'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어빙은 뛰어난 점프 능력과 화려한 공중 동작으로 많은 팬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어빙은 ABA에서 스타로 활약하다가 1976년 세븐티식서스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필라델피아는 다시 NBA 정상에 도전하는 강팀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빙의 화려한 플레이는 단순히 득점에 그치지 않고 농구를 보는 재미 자체를 높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NBA에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동부에서는 보스턴 셀틱스가 버티고 있었고 서부에는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자바가 이끄는 LA 레이커스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여러 차례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팀에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82년이었습니다. 리그 최고의 센터 가운데 한 명이었던 모지스 말론이 필라델피아에 합류했습니다. 강력한 리바운드와 골밑 득점 능력을 가진 말론이 어빙과 함께하면서 세븐티식서스는 더욱 탄탄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82-83시즌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에서 65승 17패를 기록했습니다. 말론은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고 어빙을 비롯해 모리스 칙스, 앤드루 토니 등 뛰어난 선수들이 함께했습니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말론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 말이 'Fo', Fo', Fo''입니다. 각 시리즈를 네 경기 만에 끝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완벽한 전승 우승은 아니었지만 필라델피아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경기만 패하며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NBA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를 만났습니다. 과거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를 좌절시켰던 상대였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세븐티식서스는 네 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시리즈를 끝냈고 1983년 NBA 정상에 올랐습니다.
모지스 말론은 파이널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팀의 강함은 한 선수에게만 의존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말론이 골밑을 장악하고 어빙이 공격을 이끌었으며 여러 동료가 수비와 경기 운영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3년 우승팀은 지금도 필라델피아 역사상 최고의 팀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정규시즌의 뛰어난 성적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도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앨런 아이버슨의 등장, 작은 체격의 스타가 이끈 2001년 파이널
1983년 우승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필라델피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스타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앨런 아이버슨입니다. 세븐티식서스는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아이버슨을 전체 1순위로 선택했습니다.
아이버슨은 NBA 선수 가운데 비교적 작은 체격이었지만 엄청난 속도와 드리블, 과감한 골밑 돌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 사이에서도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득점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상대 수비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크로스오버 드리블은 아이버슨을 상징하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코트 위에서 보여준 독특한 스타일과 강한 승부욕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NBA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아이버슨 시대의 가장 인상적인 시즌은 2000-01시즌입니다.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 56승 26패를 기록했고 동부 콘퍼런스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아이버슨은 해당 시즌 정규시즌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세븐티식서스는 아이버슨의 득점력을 중심으로 강한 수비를 결합한 팀이었습니다. 디켐베 무톰보를 비롯한 선수들이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힘을 보태면서 아이버슨이 공격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플레이오프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토론토 랩터스와의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에서도 밀워키 벅스와 7차전 승부를 벌였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1983년 이후 처음으로 NBA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파이널 상대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였습니다. 당시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서부 세 시리즈를 모두 승리하며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채 파이널에 올라온 강력한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파이널 1차전에서 아이버슨이 48점을 기록하며 필라델피아의 연장전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우승 후보였던 레이커스에 플레이오프 첫 패배를 안긴 것입니다. 이 경기에서 아이버슨이 슛을 성공시킨 뒤 넘어진 상대 수비수를 넘어가는 장면도 오랫동안 회자되었습니다.
이후 레이커스가 네 경기를 연속으로 가져가면서 필라델피아는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버슨이 보여준 도전은 세븐티식서스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체임벌린, 어빙과 말론, 아이버슨처럼 서로 다른 시대마다 개성이 뚜렷한 스타를 중심으로 강팀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시대와 선수는 달라졌지만 뛰어난 스타와 팀플레이가 결합해 정상에 도전한다는 전통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역사에는 NBA의 여러 시대를 대표했던 스타들이 등장합니다.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한 1967년 우승, 줄리어스 어빙과 모지스 말론이 이끈 1983년의 정상 등극, 그리고 앨런 아이버슨의 2001년 파이널 도전까지 각 시대마다 인상적인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스타들이 팀을 이끌었다는 점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만의 특별한 매력입니다.